
솔직히 예고편 영상을 보고 처음엔 그냥 가볍게 웃고 끝나는 여행 코미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뭉클해졌습니다. 웃긴데 짠한, 그 묘한 감정이 쉽게 가시질 않았습니다. 영화 퍼스트 라이드가 건드리는 건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흘려보낸 그 "다음에"라는 말의 무게입니다.
전국 1등이 목표가 된 이유, 그 시작이 범상치 않습니다
여섯 살부터 붙어 다닌 사총사가 고3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계획합니다. 목적지는 태국의 송크란 뮤직 페스티벌입니다. 여기서 송크란 뮤직 페스티벌이란 매년 4월 태국 송크란 물 축제 기간에 열리는 대규모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행사로, 전 세계 DJ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음악 이벤트 중 하나입니다.
이들이 태국을 고른 건 당연히 그냥 덥고 싼 여행지라서가 아닙니다. DJ를 꿈꾸는 연민이와 도진이가 주목한 건 슈퍼 DJ 로스의 공연이었습니다. 로스는 세계 5대 페스티벌에 메인으로 서는 현시점 원탑 DJ로, 어머니의 나라인 태국에서 시즌 마지막 무대를 마치는 루틴을 가진 인물입니다. 팬의 입장에서 이 무대를 놓치는 건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라는 걸,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바로 이해하실 겁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영화가 꺼내는 장치가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반장 정태정은 수능에서 전국 1등을 찍어 부모님을 설득하겠다는, 말 그대로 전대미문의 계획을 세웁니다. 수능 만점자나 전국 최상위권을 일컫는 이른바 수능 퍼펙트 스코어(Perfect Score) 수준의 성취를 여행 허락의 담보로 삼는 설정인데, 쉽게 말해 인생 최대의 시험을 친구들을 위해 쏟아붓겠다는 뜻입니다.
저도 처음엔 이게 너무 과한 설정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엔 그런 무모함이 진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를 위해 뭔가 믿기 어려운 일을 해내고 싶었던 마음, 그 감정만큼은 꽤 진짜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음에"가 10년이 되어버리는 순간
출국 당일, 도진이가 휴게소 화장실에 너무 오래 머무는 바람에 인천공항행 버스를 놓칩니다. 다음 비행기는 주말까지 전석 매진이었고, 첫 번째 태국 여행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납니다. 저는 이 장면이 코미디이면서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순간이 거창한 비극이 아니라 화장실에서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던 것처럼 사소한 이유로 무너지는 경험, 살면서 한 번쯤은 있지 않으셨나요.
친구들은 "다음에 꼭 같이 가자"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10년째 보류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가 건드리는 감정이 분명해집니다. 한국 사회에서 "다음에"라는 말이 가진 구조적 공허함 같은 것입니다. 실제로 사회적 관계 해체와 관련한 연구들은 학교 졸업 이후 친밀한 관계가 급격히 약화되는 현상을 반복적으로 지적합니다. 사회적 관계의 질과 주관적 행복감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에서도 성인 이후 우정 유지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꾸준히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10년 후 태정이는 국회의원 비서관이 되어 있고, 금복이는 스님이 되기 전 인턴 과정을 밟고 있으며, 도진이는 병원에서 막 퇴원한 상태입니다. 여기서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라는 서사 용어가 떠올랐습니다. 캐릭터 아크란 인물이 이야기 안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궤적을 뜻하는데, 도진이의 경우 그 변화가 성장이 아니라 상처의 축적이었다는 점이 이 영화를 단순한 코미디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핵심 지점입니다.
도진이가 꺼낸 말은 "10년 전 약속"이었습니다. 대환장 코미디처럼 보이는 이 여행의 출발점이 사실은 상처 입은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려는 절박한 시도에 가깝다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감정선이라고 봤고, 이걸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영화 전체 완성도가 갈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다음에"가 문제적인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고3 졸업 후 학교가 달라지며 자연스럽게 만남의 빈도가 줄어듬
- 취업과 사회생활 이후 각자의 사정이 생기며 약속이 유보됨
- 연민이의 뉴질랜드 이민처럼 물리적 거리가 생기며 '다음'이 불투명해짐
- 도진이처럼 개인적 상처와 정신적 어려움이 쌓이며 관계 자체가 멀어짐
태국에서 벌어지는 소동, 가볍게만 볼 수 없는 이유
10년 만에 태국행 비행기를 탄 이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동행이 하나 더 붙습니다. 태정만 바라보는 태정 바라기 옥심이입니다. 그리고 태국 현지에서는 여행사 가이드 초롱이가 도난 차량을 몰고 나타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렇게만 적어도 이미 예측 불허라는 느낌이 오는데, 실제 영화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쫄깃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두 가지 시각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소동들이 코미디로서 충분히 강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장르적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반면, 도난 차량이나 뜬금없는 동행처럼 사건을 우겨 넣은 느낌이 든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에피소드 집중형 코미디 구조를 에피소딕 내러티브(Episodic Narrative)라고 하는데, 이는 각 사건이 독립적인 웃음 포인트로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매 장면이 하나의 해프닝으로 기능하도록 설계된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리뷰 영상을 보고 느낀 건, 이 영화가 태국을 단순히 이국적인 소동의 무대로만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점이었습니다. 송크란 페스티벌의 문화적 맥락이나 태국 현지의 감각이 얼마나 살아 있느냐에 따라 배경의 깊이가 달라지는데, 이 부분은 실제로 영화를 봐야 판단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그리고 옥심이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정을 오래 좋아해 온 인물이라는 설정이 독자적인 서사로 확장되느냐, 아니면 짝사랑 코드로만 소비되느냐는 결국 각본과 연출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영화의 장르 완성도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지표로, 한국영화 관람객의 코미디 장르 선호도는 멜로·드라마 다음으로 높은 편입니다. 특히 20~30대 관객층에서 "함께 웃을 수 있는 영화"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이 영화의 타깃 전략이 시장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줍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또 하나 눈여겨볼 건 연출 맥락입니다. 남대준 감독은 영화 30일을 통해 강하늘 배우와 이미 한 차례 호흡을 맞췄습니다. 2년 만에 다시 뭉쳤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단순한 상업적 조합이 아니라 서로의 호흡을 아는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윤경호, 고규필, 최규화, 강지영 배우가 합류하면서 앙상블 코미디(Ensemble Comedy)로서의 구성이 꽤 탄탄하게 갖춰졌습니다. 앙상블 코미디란 한 명의 주인공이 아니라 여러 캐릭터가 동등한 비중으로 웃음과 감정을 나눠 갖는 형식을 말합니다.
결국 이 영화가 저에게 남긴 감정은 하나입니다. 목적지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누구"와의 시간을 자꾸 "다음으로" 미루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는 것. 10월 29일, 문화의 날 개봉에 맞춰 7,000원으로 볼 수 있다는 건 더 생각할 이유를 없애 주는 조건이기도 합니다. 오래된 친구 한 명 붙잡고 극장에 가시는 걸 권합니다. 보고 나오면 그냥 웃고 헤어지기가 아마 어려울 겁니다.